불교에서는 '내'가 오온이 모여서 만들어진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맞는 말인 것 같다. 해서, "'나'는 허상이다"라고 하는 가설을 세웠다.
사람을 인공지능 로보트라고 생각하자. 그 로보트가 세계 안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한다. 자신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어떤 일을 할 수 있고(혹은 없고) 따위를 알아야, 행동에 대한 기본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테니까. 예를 들면, 나한테 팔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팔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등을 알아야, 미친 놈처럼 붕붕 휘두르거나 할 수 있단 소리다.
그리고 이러한 원리가 또한 우리의 마음에도 똑같이 적용되지 말란 법이 없다. '나'라고 하는 것은 사회적 관계와 신체 조건, 과거에 대한 기억,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선택하는 전략 등이 모인 관념이 아닐까?
이와 관련해서 한가지 흥미로운 경험이 하나 있다. 예전에 써두었던 글을 읽어보는데, 그만 그 내용을 까먹어 버린 거다(나는 머리가 안좋다). 그 결과 내가 쓴 글을 내가 공부하는 코메디를 해야 했다. 했는데, 이런 일이 내가 가지고 있는 다른 기억에도 생긴다면? 혹시 우리는 수시로 기억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 모든 기억을 언제나 의식하고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럼 내가 보는 나는 과연 나일까? 나는 내가 보고 싶은 나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나'의 이미지는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다른 경우가 있지 않나? 그렇다면 사건의 시발점으로서 '나'라는 것은 없고, 다만 이 하이바가 멋대로 그런 것이 있을 거라고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닌가?
사람을 인공지능 로보트라고 생각하자. 그 로보트가 세계 안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한다. 자신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어떤 일을 할 수 있고(혹은 없고) 따위를 알아야, 행동에 대한 기본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테니까. 예를 들면, 나한테 팔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팔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등을 알아야, 미친 놈처럼 붕붕 휘두르거나 할 수 있단 소리다.
그리고 이러한 원리가 또한 우리의 마음에도 똑같이 적용되지 말란 법이 없다. '나'라고 하는 것은 사회적 관계와 신체 조건, 과거에 대한 기억,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선택하는 전략 등이 모인 관념이 아닐까?
이와 관련해서 한가지 흥미로운 경험이 하나 있다. 예전에 써두었던 글을 읽어보는데, 그만 그 내용을 까먹어 버린 거다(나는 머리가 안좋다). 그 결과 내가 쓴 글을 내가 공부하는 코메디를 해야 했다. 했는데, 이런 일이 내가 가지고 있는 다른 기억에도 생긴다면? 혹시 우리는 수시로 기억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 모든 기억을 언제나 의식하고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럼 내가 보는 나는 과연 나일까? 나는 내가 보고 싶은 나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나'의 이미지는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다른 경우가 있지 않나? 그렇다면 사건의 시발점으로서 '나'라는 것은 없고, 다만 이 하이바가 멋대로 그런 것이 있을 거라고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