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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2/12 중앙일보 2월 12일자 기사 (5)
중앙일보 2월 12일자 기사
잡담 2007/02/12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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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귀차니스트를 위한 기사 전문.
`치안 포퓰리즘` 추방하자 [중앙일보]
2007 어젠다 7·⑦ 끝 공권력 바로 세우기
무력한 공권력 사회적 비용 연 GDP의 1.5%
불법시위 피해 돈으로 물게 하고
공권력 도전엔 엄정한 법집행을
무력한 공권력 사회적 비용 연 GDP의 1.5%
불법시위 피해 돈으로 물게 하고
공권력 도전엔 엄정한 법집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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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9시40분 서울 서대문경찰서 신촌지구대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자영업자 김모(42)씨가 "왜 죄 없는 사람을 잡아왔느냐"며 경찰관의 멱살을 잡고 행패를 부렸다. 김씨가 술에 취해 버스 정거장에서 쓰러져 자고 있던 것을 경찰이 지구대로 데려와 보호하던 상태였다. 10여 분간 난동이 계속되자 보다 못한 경찰이 수갑을 채웠다. 김씨는 "민주화 시대에 이런 악질 경찰이 어디 있느냐"며 다시 막말을 퍼붓고 소란을 피웠다.
# 장면 2.
지난해 말 미국 뉴욕 퀸스의 주차금지 구역에 70대 중국계 노인이 차를 세웠다. 순찰 중이던 중국계 여자 경찰이 발견하고 딱지를 끊으려 했다. 노인이 허겁지겁 달려와 "한 번만 봐 달라"고 사정했지만 경찰은 무시했다. 다급해진 노인이 무심결에 주차 위반 통지서를 쓰고 있는 경찰의 팔에 손을 갖다 댔다. 그 순간 옆에 있던 흑인 경찰은 노인을 내동댕이친 뒤 현장에서 체포, 경찰서로 연행했다. 공무집행 방해 혐의였다.
한국과 미국에서 공권력의 대우가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우리나라에서 공권력이 '공권력(空權力)'이란 비아냥을 받는 건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술 취한 사람(주취자)의 난동은 일선 경찰 지구대의 고질병이 된 지 오래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휴지조각 취급을 받기 일쑤다.
지난해 5월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시위에서 시위대가 죽봉 등을 휘둘러 경찰 145명이 다쳤다. 하지만 당시 한명숙 국무총리는 불법 시위를 한 시위대와 공권력을 행사한 경찰에 대해 똑같이 "한 발짝씩 물러나라"고 했다. 우리 현실이다.
지난해 11월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위대가 관공서에 난입해 유리창을 깨고 담벼락에 불을 지르는 사태가 벌어졌다. 일심회 사건 공판에선 방청객들이 판사들에게 "개××야" "미제의 앞잡이"란 욕설을 퍼붓는 일까지 벌어졌다.
공권력의 실종은 사회적 비용의 증가로 이어진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발표한 '불법 폭력 시위로 인한 비용에 관한 연구'에서 2005년 집회.시위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최대 12조3190억원으로 추산했다. 그해 국내총생산(GDP.805조8858억원)의 1.53%에 해당하는 액수다.
◆실정법 위에 있는 '국민정서법'=민주화가 진전될수록 공권력의 집행은 엄정하다. 그러나 한국은 거꾸로다. 경찰대 이상안(행정학) 교수는 "민주화 이후 인권이 부각되면서 공권력이 법과 원칙보다는 임기응변식 대처에 치중하는 '치안 포퓰리즘'에 빠져 스스로 권위를 무너뜨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표를 의식한 정치권이 불법 행위를 법으로 단죄하는 게 아니라 정치논리에 따라 타협하는 바람에 '국민정서법'이 실정법 위에 군림하고 있다. 치안 포퓰리즘이 만연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내 진압은 불법.폭력 시위를 근절하는 데 실패했고, 경찰만 허수아비로 만들었다는 비판도 듣고 있다. 동국대 이황우(경찰행정학) 교수는 "우리나라에선 '깨진 유리창' 이론처럼 조그만 법질서 위반은 괜찮다는 풍조가 이어져 불법시위.법정난동.공무집행 방해 등이 빈발하고 있다"며 "공권력을 무시하는 행위에는 형사적.민사적 책임을 묻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 Theory)=미국의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1982년 발표한 이론. 건물주가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면 나중에 이 일대가 무법천지로 변한다는 것. 작은 무질서를 가볍게 여기면 나중에 심각한 범죄를 불러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기사는 위험하다.
1. 장면1의 경우가 마치 불법 폭력 시위와 관련된 것처럼 되어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모든 시위를 폭력 시위인 것처럼 매도하고 있다. 증거를 대라고? 바로 옆에 빼꼼히 나와있는 도표를 참고하라. 여의도 단순 집회가 은근슬쩍 올라와 있다. 일반 집회를 불법 폭력 시위와 동류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피해망상으로 보건데, 이건 시위 문화 자체를 비도덕적인 것으로 매도하려는 시도다.)
2. 장면2는 누가 보더라도 노인 공경이 상실된 비인간적 시대상의 전형이다.
3. 전혀 이유를 알 수 없는 깨진 유리창 이론의 도입. 뭔가 권위를 빌어서, 아무튼 사람들은 이론이라면 다 쪼니까, 기사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싶었나 본데, 시위는 전혀 깨진 유리창 따위가 아니다. 그렇게 조용하게 수습할 수 있는 문제라면 저치들도 괜히 쪽팔리게 밖에서 쇼하고 있진 않을 거다.
4. 기사의 흐름도 문제가 있다.
장면1. -> 장면2. -> 평택 시위 언급 -> FTA 반대 시위 언급 -> 일심회 언급 -> KDI 조사 결과(12조라는 숫자는 보는 이를 움츠러들게 만든다.) -> 경찰대 교수의 의견 인용 -> 국민정서법 언급 -> 제로 톨레랑스 원칙 제시 -> 인내 진압에 대한 부정적 견해 -> 동국대 이황우 경찰행정학 교수의 의견 제시.
다분히 음모론적이고 망상적인 나의 견해에 의하면,
장면1과 장면2를 마치 구체적이고 적합한 사례인 것처럼 위장하여 독자를 끌어들이고 있으며(이걸 낚는다고 하지?)
장면2에서 평택 시위로 넘어가는 대목에선 노골적으로 공권력 강화를 논점으로 맞추고 있다. 처음 이 기사를 읽으면서 퍼뜩 든 생각은, 아니 부동산 정책 갖고 정부 개입 어쩌구 저쩌구 시장 질서가 훼손되네 마네 하던 치들이 갑자기 왜 이러시나? 경제 분야에 대해서는 '공권력'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기득권에 영향을 줄 지도 모르는 정치 사회 분야에 대해서는 '공권력'을 주장하고 있다. 웃기는 뽕짝이다.
평택시위 다음에는 FTA가,그 후로 일심회 사건 공판에서 있었다는 법정 모독(?)(이하 '일심회')이 언급되어 있다. 일단 '일심회'는 치안 포퓰리즘과 관계가 없어 보인다. 그저 사람들이 공권력을 만만히 여긴다는 주장을 부각시키기 위해 집어넣은 일화일 뿐이다. 진정한 문제는 왜 하필이면 평택 시위와 FTA 반대 시위와 '일심회'냐 하는 것이다. 언급된 세 사건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암암리에 저건 좌파 운동가들이 벌이는 일이야라고 동의하고 있다는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따라서 이 일화들을 예시로 선택한 저변에는 매카시즘의 잔해가 있다고 여겨진다. 즉, 여러 세대에 걸쳐 반공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스레 마음속으로 좌파=빨갱이=반사회주의자=폭력시위의 말도 안되는 '항등식'을 떠올리게 하는 효과가 매우 강하단 소리다.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이 '항등식'은 매우 위험하다. 반공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 것. 다른 사람의 생각을 부인함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다툼이 생기는지는, 유치원 때부터 배운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내용은 보다 노골적인 주장을 펴고 있다. KDI의 통계 조사나 경찰대 교수의 의견 인용, 이황우 교수의 깨진 유리창은 공통적으로 말한다 ; ZERO TOLERANCE. 내가 이 기사문의 구조가 매카시즘적이라고 한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기사문을 옮기자면,
생각없이 이 기사를 읽는다면 오해하기 딱 좋다. Zero Tolerance라는 다분히 맬서스적인 용어까지 동원되어 마치 새로운 대안이나 대책인 것마냥 포장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장하고 있는 바는 전혀 새롭지 않으며, 오히려 지긋지긋한 그것이다. 이승만과 박정희와 전두환의 바로 그것. 공권력을 무시하는 행위에 형사적 민사적 책임을 묻자는 이야기는 밖에서 시위하는 놈들은 싸그리 잡아 처넣어 버리자는 것과 별로 다를 게 없다. 그야말로 '역사를 되돌리는 행위'다.
장면2에서 평택 시위로 넘어가는 대목에선 노골적으로 공권력 강화를 논점으로 맞추고 있다. 처음 이 기사를 읽으면서 퍼뜩 든 생각은, 아니 부동산 정책 갖고 정부 개입 어쩌구 저쩌구 시장 질서가 훼손되네 마네 하던 치들이 갑자기 왜 이러시나? 경제 분야에 대해서는 '공권력'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기득권에 영향을 줄 지도 모르는 정치 사회 분야에 대해서는 '공권력'을 주장하고 있다. 웃기는 뽕짝이다.
평택시위 다음에는 FTA가,그 후로 일심회 사건 공판에서 있었다는 법정 모독(?)(이하 '일심회')이 언급되어 있다. 일단 '일심회'는 치안 포퓰리즘과 관계가 없어 보인다. 그저 사람들이 공권력을 만만히 여긴다는 주장을 부각시키기 위해 집어넣은 일화일 뿐이다. 진정한 문제는 왜 하필이면 평택 시위와 FTA 반대 시위와 '일심회'냐 하는 것이다. 언급된 세 사건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암암리에 저건 좌파 운동가들이 벌이는 일이야라고 동의하고 있다는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따라서 이 일화들을 예시로 선택한 저변에는 매카시즘의 잔해가 있다고 여겨진다. 즉, 여러 세대에 걸쳐 반공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스레 마음속으로 좌파=빨갱이=반사회주의자=폭력시위의 말도 안되는 '항등식'을 떠올리게 하는 효과가 매우 강하단 소리다.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이 '항등식'은 매우 위험하다. 반공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 것. 다른 사람의 생각을 부인함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다툼이 생기는지는, 유치원 때부터 배운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내용은 보다 노골적인 주장을 펴고 있다. KDI의 통계 조사나 경찰대 교수의 의견 인용, 이황우 교수의 깨진 유리창은 공통적으로 말한다 ; ZERO TOLERANCE. 내가 이 기사문의 구조가 매카시즘적이라고 한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기사문을 옮기자면,
표를 의식한 정치권이 불법 행위를 법으로 단죄하는 게 아니라 정치 논리에 따라 타협하는 바람에 '국민 정서법'이 실정법 위에 군림하고 있다. 치안 포퓰리즘이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 일례로 1999년 경찰 수뇌부는 무(無)최루탄 원칙을 세우고 "시위대의 어지간한 폭력은 참아라"는 이른바 '인내 진압' 지침을 내렸다. 그러나 인내 진압은 불법 폭력 시위를 근절하는 데 실패했고, 경찰만 허수아비로 만들었다는 비판도 듣고 있다. ... 공권력을 무시하는 행위에는 형사적 민사적 책임을 묻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생각없이 이 기사를 읽는다면 오해하기 딱 좋다. Zero Tolerance라는 다분히 맬서스적인 용어까지 동원되어 마치 새로운 대안이나 대책인 것마냥 포장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장하고 있는 바는 전혀 새롭지 않으며, 오히려 지긋지긋한 그것이다. 이승만과 박정희와 전두환의 바로 그것. 공권력을 무시하는 행위에 형사적 민사적 책임을 묻자는 이야기는 밖에서 시위하는 놈들은 싸그리 잡아 처넣어 버리자는 것과 별로 다를 게 없다. 그야말로 '역사를 되돌리는 행위'다.
인 까닭에, 나는 경악했다. 어쩌면 바보가 아닐까? 나는 이 인간들의 '관점'을 이해할 수가 없다.(마지막 도도새가 된 기분이다. 오늘 아침엔 론도를 해야겠다.)
민주주의는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혹자는 선거가 민주라고 말한다. 그래? 그럼 의조횽도 민주주의한 거네. 아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수단일 뿐, 모든 선거가 민주적이라는 주장은 음모다. 그렇다면 민주가 뭐냐? 그것은 의사의 자유로운 소통이다. 토론과 합의다. 알 만큼 아는 시민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고, 자기 의견에 오류가 있다면 정정하고, 다른 의견의 오류를 보면 지적해주고 하며 최적의 해결을 찾아 나가는 것이 바로 민주다. 우리는 "나는 당신을 반대한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당신이 말할 권리를 방어하겠다."는 저 유명한 볼테르의 말을 가슴에 새길 필요가 있다.
따라서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자는 주장에 동의하는 당신은, 필연적으로 시위를 부정할 수 없다. 시위 또한 의사 개진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고 또 자주 쓰인 방법이다. '그들'과 다른 방법일 뿐이다. '그들'이 돈과 권력으로 직접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민중은 시위를 통하여 '그들'과 동일한 정치적 평등을 누리고자 할 뿐이다. 어떠한 시위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다른 방법론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소리요, 그것은 곧 다른 의견, 즉,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종교적 열병이니, 이는 민주주의하지 말자는 소리랑 똑같다.
물론 불법 시위나 폭력 시위는 이미 참된 시위의 기능을 잃은 불구적 행위다. 타인을 상처입히고, 자신도 상처입는 소위 惡한 속성을 띄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 즉, 소위 조중동이 때려대는 불법 시위와 폭력시위가 과연 얼마나 불법적이고 폭력적인지, 설사 그것이 불법이요 폭력적이라고해서 깨끗하게 묵살해도 되는지 , 나아가 과연 이 나라엔 불법 시위와 폭력 시위로까지 밖에 치달을 수 밖에 없는 여건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섯불리 판단해선 곤란하다.
그러므로 중앙일보 기사에서 언급된 Zero Tolerance니 시위에 대한 민사적 형사적 책임이니 하는 이야기는, 앞서 말했듯, 경악스러울 뿐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시위를 가로막고, 다른 의견을 없애고, 이데올로기로 나라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굳이 시위를 하지 않고도, 굳이 몸에 불을 지르지 않고도, 굳이 옷을 벗어제끼지 않고도 자신의 주장을 누구나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회가 제도가 문화가 필요하다.

